[로맨스]귓가에 스미는 너의 멜로디

류멍몽 0 9,461

ep3그들의 이야기 - 만났다

그 일이 있은 뒤에 재윤도 도혁을 차마 붙잡지 못했고,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.

그래, 몇 달간 머리 식히게 놔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얼마간은 특별히 터치하지도 않았다.

아니, 그래도 그렇지 그 여선배도 졸업한 마당에 아직까지 동아리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 저 뒤끝 있는 쪼잔 한 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...

[도혁]"제가 알기론 이번에 피아노 새로 뽑으셨다고 들었는데요. 그것도 여자로."

주위에 영 관심 없는 줄로만 알았더니 의외로 정보는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.

그 말대로 이번에 그를 임시적으로 대신할 새 부원이 하나 들어오긴 했다.

이혜민...이라고 했었나?

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피아노 반주를 덜컥 맡겠다고 하기에 우선 지켜봐왔다.

그리고 약 2주간 지켜본 결과, 요약하자면 이렇다.

'특별한 실력은 없고 열정만 가득한 녀석'

그녀가 들어옴으로 인해, 전 부원이었던 도혁의 실력의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.

설마하니, 피아노의 실력미흡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맞춰보지 못할 줄이야..

하도 의지와 열정만은 대단해서 봐주고 있는 중이지만

[재윤]"아 그런데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자를까 고민이네.."

[도혁]"선배나 저나 누구나 처음은 다 햇병아리 인겁니다.

그렇게 싹둑 자르려 하지마시고 따듯한 애정으로 후배의 성장을 지켜보시죠."

[재윤]"어쭈, 네가 웬일로 그렇게 인간적인 소리를 다 하냐?"

[도혁]"......."

[재윤]"아니 알 것도 같다.

보나마나 동아리 다시 들어오긴 싫으니까 누구라도 피아노 자리 꿰차고 있는 게 너한테는 좋기도 하겠지".

[도혁]"......"

[재윤]"오늘은 이쯤 하지만 포기 안한다. 너."

[도혁]"그건 좋을 대로 하시고 이만 끊어요."

그의 마른 한숨은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배고팠다.

하긴, 일어나자마자 쓸데없이 에너지를 너무 소모하긴 했지.

꼭 이 선배랑 통화하면 웬만한 운동보다도 더 지치는 것 같다니까?

[재윤]"대신 다음 주에 잠깐 와서 연습한번 봐주고 가"

[도혁]'어떻게든 끌어들일 생각이군....'

하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통화를 연장하느니, 결국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.

[도혁]"....네, 좋습니다. 그렇게 하겠습니다. 그럼."

전화를 끊고 핸드폰 액정을 확인해보니 눈을 의심했다.

그렇지 않고서야...

통화시간이 무려 1시간 38분이라니...

물론 거의 두 시간 가까이까지 대화를 이끌어간 이는 당연히 재윤선배고,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적당히 대답했을 뿐이었다.

[도혁]'아, 진짜 영양가 없는 선배라니까. 게다가 일일 동아리 참석까지..'

아니...그래도 막상 돌이켜보니, 연습을 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길 잘 한 것 같기도 하다.

적어도 한번 정도는 참여해주면 주말까지 통화해서 시달리는 일은 없을 테지

결국, 평화로운 주말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그는 재윤 선배에게 당근과 채찍을 고루 쓰는 방법을 채택하기로 했다.

'꼬르륵'

[도혁]"정말 더는 못 참겠네."

뭉그적뭉그적 거실로 나오니, 방금 전까지 통화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.

[도혁]'아까 기상했을 때부터 통화를 마친 지금까지도 계속 연습중이란 말이지'

 

토스트기에 입구를 벌려놓은 식빵 두 개를 꽂아 놓으며 그는 생각했다.

[도혁]'...알겠네, 알겠어. 선배가 말한 실력은 없고 열정만 있는 타입이 생각보다 얼마나 골치 아픈 줄'

하지만 그 연주 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올 뿐이었다.

잠시 동안 멜로디에 집중하려 눈을 감는데 무언가 익숙한 음이 귀에 꽂혔다.

[도혁]"녹턴 OP.9 NO.2?"

분명 그 곡이 확실했다.

그리고 저 곡이 저런 느낌이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을 바로 지금 처음 알았다.

[도혁]'뭐지 서정적인 멜로디를 단숨에 발랄하게 바꾸는 저 연주는...'

분명 재즈 버전도 아니거니와, 그 어떤 편곡도 하지 않은 원곡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.... 심히 발랄했다.

[도혁]'무엇보다도 경박스러울 정도의 리듬이 엄청나게 거슬리고'

아슬 아슬 줄타기를 하듯 제 딴에는 틀리지 않으려 간신히 다음 멜로디를 힘겹게 이어가는 모양인데

그 덕에 리듬은 완전히 무너져버려, 도저히 곡의 느낌이 살지 않았다.

 

[도혁]'...목적이 관심 끌기라면 이미 성공 했군.

 덕분에 지금 아주 거슬려졌으니까.'

"하. 내가원래 이렇게 참견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.."

생각을 마친 그는 곧바로 피아노 의자에 안착했고, 가느다란 손가락을 건반 위에 살포시 얹었다.

[도혁]'후우'

(배우 전환: 혜민의 방)

멀리서 잔잔하게 연주가 들려왔다.

 

[혜민]'....같은 곡?'

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연주를 멈추고, 그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.

그녀가 연주하던 중간에 멋대로 끼어들어온 멜로디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고,

게다가 모르긴 몰라도 그녀 또한 단번에 매료될 정도로 서정적인 연주였다.

(배경 전환(회상)음악실)

[재윤]"피아노 너 말이야. 이 곡을 연주할 때 어떤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지 영 감이 안 오는 모양이지?"

[혜민]"아...그게..."

[재윤]"녹턴(Nocturne)즉, 야상곡. 밤에서부터 영감을 받고, 곡 자체도 밤의 성질을 띠는 악곡장르지.

[혜민]"......"

[재윤]"물론, 야상곡이라고 해서 무조건 평온하고 우울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밖에도 여러 감정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지만.

설사 그렇다 해도, 네 연주의 분위기는 마치.... 밤은커녕 한낮에 도시락 싸들고 피크닉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.

이번에 이 곡을 편곡할 때조차 서정적인 느낌만은 최대한 살리는 선에서 작업을 해놨는데

정작 반주가 이렇게 쓸데없이 발랄하면...."

[혜민]"......"

[재윤]"....더는 말 안 해도 알겠지?"

[혜민]"....네"

(배경 전환: 혜민의 방)

분명 수십 번을 연습해서 그녀 자신도 잘 아는 곡임에도 한마디 한마디의 멜로디가 새삼 새로이 느껴졌다.

그리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.

[혜민]'아, 재윤 선배가 말한 연주가 바로 저런 것이구나.'

그 연주는 한없이 창피하고 서글펐던 그 날의 기억을 건들이기에 충분했고,

어느새 그녀는 마음이 찡해지고 눈물도 날 지경 이었다.

저 커튼을 치면 지금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이 아니라, 고요한 어둠이 펼쳐있는 밤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...

이쯤 되니 이 연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.

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어 커튼을 치고, 창문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.

그러자 그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맞은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.

반 쯤 가려진 피아노의 끄트머리를 살포시 지나,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를 하는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...

[혜민]"엄청... 예쁜 손이네"

(배경 전환: 학교 복도)

[윤미]"그래서? 그 뒤로 어떻게 된 건데?"

[혜민]"그 뒤는 무슨 뒤. 완전k.o 패배.

그런 대단한 연주를 듣고 나서 감히 계속 연주 할 수 있겠니."

[윤미]"헐.. 웬일이니. 너 평소 같으면 더 의지 불태워서 연습하고 그럴 텐데.... 천하의 이혜민이 전의를 잃을 정도면 정말 대단한 연주였나 보네?"

피식하니 가볍게 웃은 혜민의 입 꼬리가 대답을 대신해 긍정을 표현했다.

[윤미]"맞다, 야! 그건 그거고.

그래서 그 이후로 연습을 안 했단 말이야? 전혀?"

[혜민]"응."

[윤미]​"야, 이 계집애야. 내가 못산다.

너 때문에 다들 동아리 보충까지 강행하는데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해오면 어떡하려고!"

[혜민]"그래서, 오늘 그만두려고."

[윤미]"뭐?"

연습을 안 했다는 말보다도 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.

놀라서 눈이 두 배나 커진 윤미와는 반대로 정작 이혜민 본인은 제법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.

[혜민]"다들 나 하나 때문에 언제까지고 제대로 연습도 못 맞춰 보는 건 좀 아니잖아.

처음엔 내가 더 연습 많이 해서 빨리 실력 키워서 만회하면 될 것 같았는데.... 지난2주 내내 엄청 미안해서 더는 못 그러겠더라."

[윤미]"야....이혜민..."

[혜민]"주제파악 된 거겠지. 그 연주를 듣고 이제서.

지금 그 동아리에 필요한건 간만에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게 된 나 같은 생초짜 보다도 당장이라도 준비되었을 실력 있는 사람이니까...."

차라리 지난번처럼 조금 울다가 다 털어버리고 다시 힘내보지 싶었지만,

그러기엔 이미 확고한 결정을 내려버려 뭐라 말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.

[윤미]"...알겠어.

그래도 내가 너 책임지고 재윤 선배한테 다리 놔준다!"

[혜민]"오오, 그거 솔깃한데?"

그래, 안 맞는데 기어이 더 할 필요는 없지.

신중오고 의지 또한 남다른 혜민이 내린 결정이라면 얼마든지 존중할 수 있다.

산뜻하게 동아리실 문을 열어젖히는데, 피아노 앞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.

부장인 재윤 선배와 그 옆은....?

[윤미]"아, 안녕하세요. 선배님"

[혜민]"안녕하세요."

혜민 역시 동아리에서 처음 보는 뉴 페이스가 궁금한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.

한 눈에 봐도 샤프하고 잘 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그는 제법 무심한 표정이었다.

[재윤]"매번 10분전에 오는 그 부지런한 자세는 높이 살만 하네."

[혜민]"아, 네... 가, 감사합니..."

아니,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....

다른 부원들이 아직 오지 않은 바로 지금이 그만 살겠다 말할 적절한 타이밍이겠지.

입을 다시금 마음을 잡고 입을 떼려는데, 재윤 선배가 한 발 앞서서 남자를 소개시켰다.

[재윤]"이쪽은 피아노과 차도혁. 서로 인사들 해."

[도혁]"안녕하십니까."

[혜민]"네? 네..."

특유의 표정과 정말 잘 어울리는 시니컬한 목소리.

정확히 이쪽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얼떨결에 피해버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.

아니 아니, 이럴 때가 아니라고! 잠깐 뉴 페이스에 호기심이 가는 탓에 하마타면 그 상황에 말려서 원래 목적을 잊을 뻔 했다.

[혜민]"저, 선배님... 사실.."

[재윤]"너의 열정을 높이 사서 실력이 다소 부족한 네게 내가 친히 스승을 붙여주겠다."

[혜민]"네?"

[도혁]"예?"

공교롭게도 재윤 선배의 말이 두 사람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.

그나저나 어쩜 이 모양인지...

그만 두려 결심을 한 와중에 스승이라니...

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꿎은 윤미만 마주보아 입모양으로 작게 말했다.

[혜민]'나 어떡해!'

차마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.

to be continued....​ 

 

*)'시크릿 러브' 앱에서 정식 연재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!

이후의 본격적인 스토리는 앱에서 선보이겠습니다^^ 많이 많이 찾아봐 주세요~

감사합니다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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